미켈란젤로·에디슨·스티브 잡스… 그들은 천재가 아니었다, 그들을 만든 팀이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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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58회 작성일 16-04-06 16:44본문
이탈리아인(人) 미켈란젤로는 인류사에 남은 걸작 '천지창조'를 그린 화가이며 '다비드상(像)'을 만든 조각가다. 또한 뛰어난 시인, 건축가이기도 했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은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천재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며 그를 찬양했다.
이탈리아 로마의 시스티나성당 가운데 서서 천장을 뒤덮고 있는 '천지창조'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미켈란젤로가 구부정한 몸을 천장에 매단 채 홀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혁신 전략 리더십 전문가 데이비드 버커스(Burkus) 미국 오럴로버츠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켈란젤로가 '고독한 천재'라는 말은 환상(myth)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가 천재로 불리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뛰어난 동료들이다. 다들 그가 혼자서 작업했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에게는 13명의 보조 예술가들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그를 키워준 시스템이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회를 준 메디치가(家)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었다. 그는 평생을 2~3시간만 자며 약간의 포도주와 빵을 먹고 일을 했다. 미켈란젤로 스스로도 "내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결코 나를 천재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은 창조성을 가진 천재에 대한 갈망이 큰 나라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며 천재론을 강조한 이후 삼성그룹은 천재 찾기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경제정책도 '창조 경제'다. 그런데 왜 우리 곁에는 천재들이 안 보일까.
버커스 교수는 혁신 전략 등을 공유하는 팟캐스트 '리더랩(LDRLB) 설립자이며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포브스 등에 창조성·혁신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전문가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창조성, 신화를 다시 쓰다(Myths of Creativity)의 저자이기도 하다. '싱커스50'도 그를 주목할 한한 미래학자로 지목했다. 그는 "기업을 혁신하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고독한 천재는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그를 영국 런던에서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전구를 개발한 에디슨, 전화기를 개발한 벨, 윈도를 개발한 빌 게이츠, 21세기를 대표하는 혁신가 스티브 잡스, 이들은 모두 천재 아닌가요?
"그들은 누구도 생각 못하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 천재가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팀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방법이 천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구 등 에디슨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발명품은 사실 찰스 배철러, 존 애덤스 등 14명이 동업한 결과입니다. 에디슨이 세운 먼로파크 연구원들은 '사실 에디슨이란 말은 집합명사였고, 그는 고객을 접촉하거나 언론을 상대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벨도 마찬가지입니다. 벨이 발명한 전화기는 또 다른 발명가 일라이셔 그레이가 같은 날 특허를 신청했지만 한발 늦었다는 이유로 공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원천 기술인 그래픽 인터페이스(소프트웨어 일종)를 두고 서로 싸운 것을 알고 있나요? 그런데 그건 1970년대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가 먼저 개발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기술은 1945년 미군 소속 공학자 버니바 부시가 초기 형태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세상을 뒤집을 만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천재는 없습니다. 과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제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천재적인 팀만 있을 뿐입니다. 혁신은 '팀 스포츠' 입니다. 에디슨, 벨, 게이츠, 잡스는 그 천재적인 팀을 이끄는 리더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참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친구나 동료들이 있잖아요.
"현재까지의 연구로 볼 때 유전학적으로 타고나는 창조성이란 것은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조차 뇌를 검사해봤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용량이 조금 작은 것 외에는 특이한 점이 없었습니다. 범재(凡才)들은 천재들이 가만히 있다가 엄청난 영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겁니다. '유레카(Eureka·깨달았다)'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아르키메데스는 밀도와 중량 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목욕하면서 측정 방법을 알아냈을 뿐입니다. 뉴턴 역시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중력을 생각해낸 것이 아닙니다. 뉴턴의 전기를 집필한 윌리엄 스터클리에 따르면 두 사람이 뉴턴의 집에서 중력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심층적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혼자 연구하는 게 편한 사람도 있지 않나요?
"캐나다 맥길대 케빈 던바 교수는 1990년 분자생물학연구소 4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연구원들을 관찰했습니다. 영상을 분석해보니 이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시점은 현미경을 바라볼 때가 아닌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였어요. 자신의 아이디어를 동료에게 말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혁신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남들에게 말하다가 도난당할 수도 있지 않나요?
"컴퓨터 천재 하워드 H 에이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들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갈 것을 걱정하지 마라. 당신의 아이디어가 좋다면 아마 다른 사람의 목구멍 안으로 그것을 밀어 넣어야 할 것이다.' 사실 대다수 회사는 이미 멋진 아이디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본인은 그 아이디어를 빼앗길까 봐 걱정하지만, 사실 걱정해야 할 것은 그것이 무시당할 가능성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1975년 코닥의 연구진은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습니다. 그러나 존 로버트슨 부사장은 '몇년을 검토했지만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지요. 방사선을 이용해 외과 수술 없이 종양을 파괴하는 수술법을 개발한 존 애들러도 20년을 의료 기업들에 퇴짜를 맞았어요. 워너브러더스 창업자 H M 워너는 유성 영화 아이디어를 무시하며 '대체 누가 배우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없어서 혁신을 못 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누구나 창조성은 갖고 있으니까요.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할 뿐이지요."
당신이 신(新)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의 리더라면?
먼저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뽑아 팀을 만들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들이 마음껏 연구하도록 자율권을 주고, 엄청난 인센티브도 약속할 것이다. 근무 환경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본 카페 같은 사무실. 직원들이 이곳에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자유 발언으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방법)을 하는 것을 보며 '난 혁신적인 리더야'라고 뿌듯해할 것이다.
그러나 버커스 교수는 이 방법으로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몇 가지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고의 전문가로 팀을 구성한다는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필요없다는 것인가요?
"전문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은 본인의 창조력을 저해할 뿐 아니라 팀의 창조적 성과를 감소시킵니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들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기존 해결책을 제안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방안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때로는 문외한들이 최고의 발명품을 개발합니다. 의료기기 전문 업체 마틴 바이오닉스는 신입 사원의 95%를 인턴으로 고용합니다. 제이 마틴 CEO가 처음 회사를 만들 때는 각 분야의 이름난 전문가들을 직원으로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기존 해결 방식을 고수했고, 그 방식에 시간과 돈을 많이 들이면 해결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어요. 결국 마틴은 그들을 해고하고 각 대학을 다니며 학생들과 인턴십 형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수많은 제품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물리학계에서는 30세까지 노벨상을 타지 못하면 새 삶을 찾는 편이 낫다는 농담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세운 것도 26세였습니다."
―그래도 기업에서는 전문가적 경험이 필수적이지 않나요? 단순 연구가 아니니까요.
"당신이 무엇을 만들지 알고, 그 물건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도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전문가보다는 인턴을 고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외부인들의 아이디어를 수혈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으면 그 조직은 창조성을 위해선 완벽합니다.
창조성을 위해 가장 좋은 팀 구성은 신선한 시각을 가진 신입과 경험이 많은 오래된 동료의 결합입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팀원을 바꿔주는 것도 좋습니다. 팀원 간 적당한 친밀감은 협업에 도움이 되지만, 너무 친해지면 조직이 친목 단체로 전락해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지요. 미국 디자인 기업 컨티뉴엄은 디자이너, 엔지니어, 심리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으로 팀을 구성합니다. 정전기를 이용해 먼지를 청소하는 피앤지의 '스위퍼 웻 젯', 리복의 발목 보호 운동화 '펌프' 등이 이런 다양한 팀원의 결합으로 탄생했지요."
―외부인 수혈은 어떻게 하나요?
"공모전 등을 통해 클라우드소싱(crowd sourcing·불특정 다수의 아이디어를 모집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하면 됩니다. 이 방법은 대규모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보다 효과가 뛰어나죠.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는 2001년부터 R&D 비용을 늘렸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고 오히려 외부인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이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며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도 2006년부터 '넷플릭스 프라이즈'라는 대규모 공모전을 통해 비전문가들이 동영상 품질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놓도록 하고 있습니다."
―팀 구성 후 운영은 어떻게 하나요?
"창조성을 위해서라면 직위를 모두 없애고 수평적인 구조로 운영해야 합니다. 팀원 간 의사 소통은 직접 해야 하고요. 중간 관리층을 없애는 것이 핵심입니다. 리더는 아이디어를 주도한 사람이 돼야 하고요. 그들의 급여도 성과로 책정돼야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방한 소재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 앤드 어소시에이츠(이하 고어)'입니다. 이곳에는 부서별 구분도, 관리자층도 없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 일단 연구를 시작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연구에 가담하면 프로젝트는 힘을 얻고, 아무도 합류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돼 버립니다. 연구를 시작한 사람이 리더가 되고요. 이를 '격자형 조직 구조'라고 합니다. 이 방법으로 고어는 산악 자전거 케이블, 잘 끊어지지 않는 기타 줄 등 수많은 신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고어는 공장도 200명 이하 소규모로 운영합니다. 대신 공장을 여러 개 만들고 이들을 인접시켜 정보 교류가 일어나도록 하지요."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기존 업무는 어떻게 보나요?
"그래서 근무시간의 유연화가 필요합니다. 기존 근무시간 외에 '딴짓'을 할 시간을 주라는 것이지요. 혁신으로 유명한 기업들은 근무시간의 10~15% 정도를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내버려둡니다. 앞서 언급한 고어는 근무시간의 10%를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고, 포스트잇으로 유명한 3M은 15%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잇 자체가 '딴짓 연구'로 개발됐기 때문이지요. 유리 회사 코닝도 근무시간의 10%를 자유 연구로 보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폐기된 아이디어도 되살려냅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각각 '해킹 주간', '해킹톤'이라는 이름으로 자율 근무시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의 자회사 스퀘어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스퀘어 월렛'은 해킹 주간에 탄생했습니다."
―교수님은 '브레인스토밍'을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브레인스토밍 방식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브레인스토밍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기업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을 보면 상당수가 어제 본 야구 경기 같은 잡담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다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브레인스토밍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 각자가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하고, 그 조사를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축적한 다음 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서로 비판하고 평가하면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사전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차라리 밖에서 사람 한 명 더 만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에요. 미국 수제 맥주 '새뮤얼 애덤스'를 창업한 짐 코크는 '내 아이디어는 현실 세계의 자극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라이너스 폴링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다'고 했지요."
―찾아보신 기업 중 가장 창조성이 높은 기업은 어디인가요?
"미국 디자인 기업 '아이데오(IDEO)'입니다. 애플과 함께 일하는 디자인 회사로 유명하지요. 아이데오의 사무실은 다른 디자인 회사만큼 세련되지 않습니다. '이곳이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가 맞나'는 의심이 들 정도지요. 천장에는 직원들이 타는 자전거가 매달려 있고, 한 사무실에는 비행기 날개가 벽을 뚫고 나와 있습니다. 이곳은 브레인스토밍을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원들은 사전 조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이들은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고객사와 고객사의 소비층, 제품 기술과 기타 관련 기술을 연구합니다. 시제품을 만들어 현장에서 이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존 제품 소비자도 분석합니다. 소비자와 제품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해 민속학자나 인류학자들을 고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제품들을 가지고 회의실에 모여 브레인스토밍으로 서로에 대한 평가를 시작하지요. 회의를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중재자도 있고요. 이렇게 창조성은 제대로 된 조사와 규칙 속에서 발현됩니다."
―흔히 창조성을 키우기 위해선 기존 틀을 깨라고 하지 않나요?
"우린 흔히 '창조성을 위해선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고 하지요. 그런데 상자 안의 상황도 제대로 모르면서 상자 밖의 상황을 생각한다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나요? 제약이 창조성을 높인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항입니다. 창조성이 가장 빛나는 글은 무엇인가요? 일본 하이쿠나 영국 14행시지요.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메슈 메이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대리석이 아니라 점토였다면 걸작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런던=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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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의 시스티나성당 가운데 서서 천장을 뒤덮고 있는 '천지창조'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미켈란젤로가 구부정한 몸을 천장에 매단 채 홀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혁신 전략 리더십 전문가 데이비드 버커스(Burkus) 미국 오럴로버츠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켈란젤로가 '고독한 천재'라는 말은 환상(myth)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가 천재로 불리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뛰어난 동료들이다. 다들 그가 혼자서 작업했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에게는 13명의 보조 예술가들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그를 키워준 시스템이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회를 준 메디치가(家)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었다. 그는 평생을 2~3시간만 자며 약간의 포도주와 빵을 먹고 일을 했다. 미켈란젤로 스스로도 "내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결코 나를 천재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은 창조성을 가진 천재에 대한 갈망이 큰 나라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며 천재론을 강조한 이후 삼성그룹은 천재 찾기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는 경제정책도 '창조 경제'다. 그런데 왜 우리 곁에는 천재들이 안 보일까.
버커스 교수는 혁신 전략 등을 공유하는 팟캐스트 '리더랩(LDRLB) 설립자이며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포브스 등에 창조성·혁신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전문가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창조성, 신화를 다시 쓰다(Myths of Creativity)의 저자이기도 하다. '싱커스50'도 그를 주목할 한한 미래학자로 지목했다. 그는 "기업을 혁신하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고독한 천재는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그를 영국 런던에서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전구를 개발한 에디슨, 전화기를 개발한 벨, 윈도를 개발한 빌 게이츠, 21세기를 대표하는 혁신가 스티브 잡스, 이들은 모두 천재 아닌가요?
"그들은 누구도 생각 못하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 천재가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팀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방법이 천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구 등 에디슨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발명품은 사실 찰스 배철러, 존 애덤스 등 14명이 동업한 결과입니다. 에디슨이 세운 먼로파크 연구원들은 '사실 에디슨이란 말은 집합명사였고, 그는 고객을 접촉하거나 언론을 상대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벨도 마찬가지입니다. 벨이 발명한 전화기는 또 다른 발명가 일라이셔 그레이가 같은 날 특허를 신청했지만 한발 늦었다는 이유로 공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원천 기술인 그래픽 인터페이스(소프트웨어 일종)를 두고 서로 싸운 것을 알고 있나요? 그런데 그건 1970년대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가 먼저 개발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기술은 1945년 미군 소속 공학자 버니바 부시가 초기 형태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세상을 뒤집을 만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천재는 없습니다. 과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제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천재적인 팀만 있을 뿐입니다. 혁신은 '팀 스포츠' 입니다. 에디슨, 벨, 게이츠, 잡스는 그 천재적인 팀을 이끄는 리더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참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친구나 동료들이 있잖아요.
"현재까지의 연구로 볼 때 유전학적으로 타고나는 창조성이란 것은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조차 뇌를 검사해봤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용량이 조금 작은 것 외에는 특이한 점이 없었습니다. 범재(凡才)들은 천재들이 가만히 있다가 엄청난 영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겁니다. '유레카(Eureka·깨달았다)'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아르키메데스는 밀도와 중량 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목욕하면서 측정 방법을 알아냈을 뿐입니다. 뉴턴 역시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중력을 생각해낸 것이 아닙니다. 뉴턴의 전기를 집필한 윌리엄 스터클리에 따르면 두 사람이 뉴턴의 집에서 중력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심층적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혼자 연구하는 게 편한 사람도 있지 않나요?
"캐나다 맥길대 케빈 던바 교수는 1990년 분자생물학연구소 4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연구원들을 관찰했습니다. 영상을 분석해보니 이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시점은 현미경을 바라볼 때가 아닌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였어요. 자신의 아이디어를 동료에게 말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혁신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남들에게 말하다가 도난당할 수도 있지 않나요?
"컴퓨터 천재 하워드 H 에이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들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갈 것을 걱정하지 마라. 당신의 아이디어가 좋다면 아마 다른 사람의 목구멍 안으로 그것을 밀어 넣어야 할 것이다.' 사실 대다수 회사는 이미 멋진 아이디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본인은 그 아이디어를 빼앗길까 봐 걱정하지만, 사실 걱정해야 할 것은 그것이 무시당할 가능성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1975년 코닥의 연구진은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습니다. 그러나 존 로버트슨 부사장은 '몇년을 검토했지만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지요. 방사선을 이용해 외과 수술 없이 종양을 파괴하는 수술법을 개발한 존 애들러도 20년을 의료 기업들에 퇴짜를 맞았어요. 워너브러더스 창업자 H M 워너는 유성 영화 아이디어를 무시하며 '대체 누가 배우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없어서 혁신을 못 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누구나 창조성은 갖고 있으니까요.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할 뿐이지요."
당신이 신(新)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의 리더라면?
먼저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뽑아 팀을 만들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들이 마음껏 연구하도록 자율권을 주고, 엄청난 인센티브도 약속할 것이다. 근무 환경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본 카페 같은 사무실. 직원들이 이곳에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자유 발언으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방법)을 하는 것을 보며 '난 혁신적인 리더야'라고 뿌듯해할 것이다.
그러나 버커스 교수는 이 방법으로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몇 가지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고의 전문가로 팀을 구성한다는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필요없다는 것인가요?
"전문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은 본인의 창조력을 저해할 뿐 아니라 팀의 창조적 성과를 감소시킵니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들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기존 해결책을 제안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방안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때로는 문외한들이 최고의 발명품을 개발합니다. 의료기기 전문 업체 마틴 바이오닉스는 신입 사원의 95%를 인턴으로 고용합니다. 제이 마틴 CEO가 처음 회사를 만들 때는 각 분야의 이름난 전문가들을 직원으로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기존 해결 방식을 고수했고, 그 방식에 시간과 돈을 많이 들이면 해결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어요. 결국 마틴은 그들을 해고하고 각 대학을 다니며 학생들과 인턴십 형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수많은 제품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물리학계에서는 30세까지 노벨상을 타지 못하면 새 삶을 찾는 편이 낫다는 농담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세운 것도 26세였습니다."
―그래도 기업에서는 전문가적 경험이 필수적이지 않나요? 단순 연구가 아니니까요.
"당신이 무엇을 만들지 알고, 그 물건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도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전문가보다는 인턴을 고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외부인들의 아이디어를 수혈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으면 그 조직은 창조성을 위해선 완벽합니다.
창조성을 위해 가장 좋은 팀 구성은 신선한 시각을 가진 신입과 경험이 많은 오래된 동료의 결합입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팀원을 바꿔주는 것도 좋습니다. 팀원 간 적당한 친밀감은 협업에 도움이 되지만, 너무 친해지면 조직이 친목 단체로 전락해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지요. 미국 디자인 기업 컨티뉴엄은 디자이너, 엔지니어, 심리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으로 팀을 구성합니다. 정전기를 이용해 먼지를 청소하는 피앤지의 '스위퍼 웻 젯', 리복의 발목 보호 운동화 '펌프' 등이 이런 다양한 팀원의 결합으로 탄생했지요."
―외부인 수혈은 어떻게 하나요?
"공모전 등을 통해 클라우드소싱(crowd sourcing·불특정 다수의 아이디어를 모집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하면 됩니다. 이 방법은 대규모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보다 효과가 뛰어나죠.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는 2001년부터 R&D 비용을 늘렸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고 오히려 외부인의 아이디어를 빌리는 '이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며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도 2006년부터 '넷플릭스 프라이즈'라는 대규모 공모전을 통해 비전문가들이 동영상 품질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놓도록 하고 있습니다."
―팀 구성 후 운영은 어떻게 하나요?
"창조성을 위해서라면 직위를 모두 없애고 수평적인 구조로 운영해야 합니다. 팀원 간 의사 소통은 직접 해야 하고요. 중간 관리층을 없애는 것이 핵심입니다. 리더는 아이디어를 주도한 사람이 돼야 하고요. 그들의 급여도 성과로 책정돼야 합니다. 대표적인 곳이 방한 소재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 앤드 어소시에이츠(이하 고어)'입니다. 이곳에는 부서별 구분도, 관리자층도 없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 일단 연구를 시작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연구에 가담하면 프로젝트는 힘을 얻고, 아무도 합류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돼 버립니다. 연구를 시작한 사람이 리더가 되고요. 이를 '격자형 조직 구조'라고 합니다. 이 방법으로 고어는 산악 자전거 케이블, 잘 끊어지지 않는 기타 줄 등 수많은 신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고어는 공장도 200명 이하 소규모로 운영합니다. 대신 공장을 여러 개 만들고 이들을 인접시켜 정보 교류가 일어나도록 하지요."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기존 업무는 어떻게 보나요?
"그래서 근무시간의 유연화가 필요합니다. 기존 근무시간 외에 '딴짓'을 할 시간을 주라는 것이지요. 혁신으로 유명한 기업들은 근무시간의 10~15% 정도를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내버려둡니다. 앞서 언급한 고어는 근무시간의 10%를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고, 포스트잇으로 유명한 3M은 15%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잇 자체가 '딴짓 연구'로 개발됐기 때문이지요. 유리 회사 코닝도 근무시간의 10%를 자유 연구로 보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폐기된 아이디어도 되살려냅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각각 '해킹 주간', '해킹톤'이라는 이름으로 자율 근무시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의 자회사 스퀘어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스퀘어 월렛'은 해킹 주간에 탄생했습니다."
―교수님은 '브레인스토밍'을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브레인스토밍 방식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브레인스토밍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기업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을 보면 상당수가 어제 본 야구 경기 같은 잡담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다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습니다. 브레인스토밍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 각자가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하고, 그 조사를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축적한 다음 그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서로 비판하고 평가하면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사전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차라리 밖에서 사람 한 명 더 만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에요. 미국 수제 맥주 '새뮤얼 애덤스'를 창업한 짐 코크는 '내 아이디어는 현실 세계의 자극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라이너스 폴링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다'고 했지요."
―찾아보신 기업 중 가장 창조성이 높은 기업은 어디인가요?
"미국 디자인 기업 '아이데오(IDEO)'입니다. 애플과 함께 일하는 디자인 회사로 유명하지요. 아이데오의 사무실은 다른 디자인 회사만큼 세련되지 않습니다. '이곳이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가 맞나'는 의심이 들 정도지요. 천장에는 직원들이 타는 자전거가 매달려 있고, 한 사무실에는 비행기 날개가 벽을 뚫고 나와 있습니다. 이곳은 브레인스토밍을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원들은 사전 조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이들은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고객사와 고객사의 소비층, 제품 기술과 기타 관련 기술을 연구합니다. 시제품을 만들어 현장에서 이용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존 제품 소비자도 분석합니다. 소비자와 제품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해 민속학자나 인류학자들을 고용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제품들을 가지고 회의실에 모여 브레인스토밍으로 서로에 대한 평가를 시작하지요. 회의를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중재자도 있고요. 이렇게 창조성은 제대로 된 조사와 규칙 속에서 발현됩니다."
―흔히 창조성을 키우기 위해선 기존 틀을 깨라고 하지 않나요?
"우린 흔히 '창조성을 위해선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고 하지요. 그런데 상자 안의 상황도 제대로 모르면서 상자 밖의 상황을 생각한다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나요? 제약이 창조성을 높인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항입니다. 창조성이 가장 빛나는 글은 무엇인가요? 일본 하이쿠나 영국 14행시지요.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메슈 메이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대리석이 아니라 점토였다면 걸작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런던=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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